"살인의 흉기를 먹어치우다" - 추리소설의 오래된 내러티브 1953년 로알드 달은 자신의 단편소설 「도살장으로 끌려나는 어린양」에서 추리소설 역사상 요리가 사용된 최고의 반전을 기록했다. 메리 멀로니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남편의 머리를 저녁식사로 구우려던 꽝꽝 언 양고기 다리로 후려쳐 죽인다. 이후 양고기를 오븐 안에 던져 넣고 집을 빠져나가 식료품점에서 알리바이를 만들고 돌아와 남편의 죽었다고 경찰에 신고한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죽은 남편의 동료들인 형사들은 메리가 범인일 거라고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살인에 쓰인 흉기만 찾으면, 범인은 잡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메리는 양고기다리 요리를 대접하고, 그렇게 형사들은 살인의 흉기를 맛있게 먹어치운다.
이 외에도 요리와 살인이 공모한 기막히게 멋진 이야기들은 많다. 음식과 살인이 어우러진 장면 역시 미스터리 소설 역사상 셀 수 없다. '요리'와 '살인'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이야기 만들기를 고심하는 이들이 있다. 이 책에 모인 110명의 세계적인 미스터리 작가들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근사한 반전과 캐릭터의 성격을 집약하기 위한 도구로 다양한 요리와 음식을 사용한다. 그들이 혹은 그들이 창조한 세계에서 독자들의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매우 '개인적인' 레시피를 공개한다.
'하드보일드' 아침식사, '스릴' 넘치는 메인 요리, '코지' 디저트까지! 미스터리 작가의 식탁에 초대합니다 이름만으로도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세계적인 미스터리 작가들이 모였다.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요리'로 말이다.
'서스펜스 여왕' '플롯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메리 히긴스 클라크는 가을이 왔음을 미식축구 시즌 개막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정도의 미식축구 광팬이다. 클라크는 일요일 오후나 이른 저녁 슬로쿠커 가득 칠리를 끓여놓고 남편과 함께 경기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자이언츠 경기가 있는 밤을 기념하는 메리의 칠리" 레시피를 기꺼이 공개한다.
다코타 패닝 주연의 영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의 원작자인 로라 립먼은 이모할머니의 연어 볼 레시피를 자랑스럽게 알려준다. 단, 립먼은 연어 볼을 조각낸 아몬드 위에 굴리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해 그냥 그릇에 담아내지만 말이다.
그런가하면, 포브스가 발표한 2016년 세계 작가 수입 순위에 지난 1년간 9천 500만 달러(약 1천 59억 원)의 수익으로 1위를 차지한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의 아버지 제임스 패터슨은 1940년대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족 레시피 '할머니의 킬러 초콜릿 케이크'를 독자들에게 터놓는다. 알렉스 크로스가 늘 잡고 싶어 하는 '킬러'가 여기 하나 있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말이다.
'킨제이 밀혼'을 앞세운 여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수 그래프턴은 "이 놀라운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만으로도 혼비백산하는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라고 운을 띄운다. 의구심을 누르고 실제로 만들어 먹어보는 독자들의 경우 일단 먹을 때의 충격에서 회복되고 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나. "이상하게 맛있다"라는 독자들의 증언이 있었음을 알리며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만들어먹는 다소 기괴한 레시피를 당당히 공개한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의 루이즈 페니는 『치명적인 은총』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만찬의 한 장면을 들며 캐나다의 국민 요리사 마담 브누아에게 직접 배운 투르티에 레시피를 엄선하여 알려준다. "이 책을 위한 투르티에 레시피 선택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이며.
아서 코난 도일에서부터 도로시 세이어스를 거쳐 스콧 터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독이 든 음식이나 술로 등장인물들을 죽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중 절반 이상이 독이 든 음식물로 살해당한 피해자를 그리고 있다. 우리는 스콘과 홍차를 빼놓고 미스 마플을 생각할 수 없고(미스 마플은 그녀가 등장하는 열두 권의 장편과 스무 편의 단편을 통틀어 143잔의 홍차를 마셨다), 땅콩버터와 피클 샌드위치를 빼놓고 킨제이 밀혼을 생각할 수 없으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잭 리처를 상상할 수 없고, 듀워스를 온더록으로 마시지 않는 알렉스 쿠퍼를 상상할 수 없으며, 네로 울프에게서 그의 개인 요리사 프리츠가 매일 내놓는 엄청난 요리들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MWA, Mystery Writers of America는 음식과 살인이 소설 속에서 얼마나 밀접히 얽히는지를 생각할 때 이 주제에 마땅한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은 범죄와도 같은 일이라고 판단, 이에 특별히 미스터리 팬들을 위한 요리책을 내놓게 되었다. 이 책에는 메리 히긴스 클라크, 할런 코벤, 넬슨 드밀, 샬레인 해리스, 제임스 패터슨 등 세계 최고의 작가들이 제공한 110개의 레시피가 실려 있다. 미국 ABC 방송국의 드라마 <캐슬>의 주인공인 가공의 추리소설 작가 리처드 캐슬도 한 꼭지를 담당했다.
당신을 흥분케 한 미스터리 소설 속 문제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이런 식단은 어떨까? 아침식사는 앨라페어 버크가 공개한 비법대로 '럼주에 적신 누텔라 토스트'로 간단하지만, 무겁게 시작하는 거다. 리처드 캐슬의 레시피로 '다음날 아침을 위한 핫케이크'나 태미 캘러의 '글루텐프리 바나나 빵'도 좋겠다. 아침을 거하게 먹었으니 점심 생각이 없을 수 있다. 점심식사는 건너뛰고 이른 저녁을 정찬 요리로 차리면 얼추 균형이 맞을 것이다.
A 코스는 이렇다. 식전 음료는 생략하고 바로 애피타이저로 넘어간다. 케이트 화이트의 '교활한 콩 딥'에 채소를 곁들이고, 수프는 경마광인 존 매커보이의 레시피로 만드는 '파산자의 굴라시'다. 메인 요리는 로렌조 카르카테라의 '마리아 할머니의 파스타 푸타네스카'이고, 곁들임 요리는 상큼하게 안젤라 제먼의 '그라파에 빠진 체리'로 한다. 안젤라 제먼의 곁들임 요리는 그녀의 말을 빌자면, "메인 요리에 곁들여질 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디저트를 장식"했기 때문에 우리도 디저트는 과감히 생략하자.
B 코스는 어떤가. 우선 할런 코벤의 '마이런의 게살 딥'으로 시작한다.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프라이팬에 익혀서 섞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간편할 수 없다. 애피타이저를 따뜻한 딥으로 선택했으니 수프보다 샐러드가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자이언츠 경기가 있는 밤을 기념하는 메리의 칠리'가 너무 매력적이다. 대신 메인 요리를 좀 가볍게 가기로 한다. 캐시 라익스의 '새우 스캠피'나(그녀를 떠올리면 당연히 '뼈(본즈Bones)' 요리를 소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데이비드 모렐의 '토머스 드 퀸시의 파스타 없는 파스타' 정도가 좋겠다. 빌 프론지니의 '무명 탐정의 이탈리아 마늘빵'을 곁들이고, 디저트로 조셉 파인더의 '도린의 사과 크럼블'이 연이어 식탁에 오른다. 달콤한 디저트까지 챙겨먹었으니 술보다는 리 차일드의 '한 주전자의 커피'로 마무리하면 완벽한 식사다.
그저 음식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으로 치부하기에 이 세계적인 작가들은, 이렇게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일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요리와 살인의 상관관계다. 뿐만 아니라, 음식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보여준다. 장 브리야 사바랭은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이 말은 특히 추리소설 시리즈의 대표적 탐정들을 두고 한 이야기 같다.
레시피는 물론이고, 작가들이 들려주는 뒷이야기 역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분명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볼 때 여기에 실린 요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책은 미스터리 팬들에게 보내는 MWA의 작은 선물이다.
무엇을 먹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